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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의 계약자 2기 (스오, 헤이, 이자나미)

속편이라는 말만 믿고 기대감을 안고 봤다가 전작과 너무 달라 당황한 경험, 애니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흑의 계약자 2기는 1기의 그 냉혹한 첩보 액션 분위기를 예상했던 저에게 꽤 뜻밖의 방향으로 찾아온 작품이었습니다. 당황했지만, 다 보고 나서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뒤바뀐 스오의 일상

2기의 무대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입니다. 도쿄 익스플로전 당시 유성우가 하늘을 수놓던 밤, 쌍둥이인 스오 파블리첸코와 시온의 운명은 크게 뒤바뀝니다. 이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평범하게 살아가던 스오는 여러 세력의 습격에 휘말리고, 목걸이에 담긴 유성핵 조각을 계기로 계약자로 각성합니다. 1기부터 이어진 계약자 설정이 2기에서는 스오 한 사람의 정체성과 성장에 더욱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스오가 계약자로 각성하는 과정과 맞물려, 헤이는 정반대의 상황에 처합니다. 1기에서 강력한 전투 능력을 보여줬던 그는 초반 전투에서 대계약자 병기의 공격을 받은 뒤 능력을 잃습니다. 압도적인 강자였던 헤이가 이전처럼 싸울 수 없게 된 변화는 저로서는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이후 헤이가 스오를 이끌며 관계와 내면을 드러내는 과정은 2기가 1기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이야기에서 중요한 장치가 되는 것은 스오가 목걸이에 지니고 있던 유성핵 조각입니다. 여러 세력이 이를 쫓는 가운데, 유성핵 조각은 스오의 각성과 기억에 영향을 주며 그녀의 정체성에 관한 비밀로 이어집니다. 단순히 전투를 위한 힘의 원천이 아니라 스오가 자신이 누구인지 마주하게 만드는 장치라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첩보 액션에서 헤이와 스오의 성장 서사로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2기의 전반부는 상당히 잔잔합니다. 헤이가 스오에게 전투 기술을 가르치는 장면들, 두 사람이 조금씩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 꽤 긴 호흡으로 그려집니다. 1기의 감정을 절제한 냉혹한 분위기를 기대했던 분이라면 이 지점에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습니다. 2기는 첩보 액션보다 헤이와 스오의 관계를 중심으로 한 성장 서사에 더 가깝습니다.
2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축은 인입니다. 미타카 문서에서 이자나미로 불리는 인은 이전과 전혀 다른 힘을 드러내며 이야기의 중심에 놓입니다. 1기에서 조용하고 수동적이던 인이 세계의 운명을 좌우할 존재로 변해 있다는 설정은 제게 이 작품에서 가장 강렬한 반전으로 다가왔습니다. 헤이가 그녀를 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건다는 구도가 전반적인 이야기의 정서적 무게를 결정합니다.
스오의 서사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쌍둥이인 시온과 얽힌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출생 자체에 감춰진 비밀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이는 2기가 SF 액션의 외피 안에서 가장 진지하게 다루는 주제입니다. 그 진실을 알게 된 스오가 무너지지 않고 자기 신념, 즉 사람을 죽이지 않겠다는 원칙을 끝까지 붙든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가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을 꼽자면 바로 이 지점입니다.

1기와 비교하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차이는 액션과 인물 관계에 두는 비중입니다. 1기가 조직들의 대립과 긴박한 전투를 중심으로 세계관의 미스터리를 넓혀갔다면, 2기는 능력을 잃은 헤이와 스오가 함께 이동하며 신뢰를 쌓는 과정에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합니다.

헤이 역시 처음부터 완성된 강자로 움직이기보다 스오를 보호하고 가르치는 과정에서 무너진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드러냅니다. 결말도 하나의 명확한 답을 제시하기보다 스오와 인, 헤이의 운명을 여러 방향으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런 변화 때문에 2기는 전작의 첩보 액션을 그대로 확장한 속편보다는 인물의 희생과 선택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제작사 BONES는 2기에서도 액션 장면뿐 아니라 인물의 표정과 관계 변화를 세밀하게 보여줍니다. 저는 특히 헤이와 스오가 서로를 경계하다가 조금씩 신뢰하게 되는 과정에서 그런 연출이 잘 드러났다고 느꼈습니다.

이자나미와 함께 남겨진 구원과 상실

다 보고 나서 한동안 멍했다고 앞서 말씀드렸는데, 그 이유를 찾는 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결말에서 스오는 자신이 과거에 죽은 원래 스오를 바탕으로 시온의 능력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였다는 진실과 마주합니다. 이후 시온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지구에서 스오는 이전 여정의 기억을 잃은 채 평범한 삶을 살아갑니다. 헤이는 인의 몸을 안고 모습을 감추며, 두 사람의 운명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은 채 남습니다.

스오에게는 원하던 평범한 일상이 주어졌지만, 그 과정에서 시온과 이전의 기억을 잃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완전한 해피엔딩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이 결말이 구원과 상실을 동시에 남겼기 때문에 더욱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2기의 결말은 갈등을 시원하게 해소하기보다 슬픔과 아름다움이 뒤섞인 감정을 조용히 가라앉게 만듭니다. 모든 것이 끝난 뒤에도 스오와 헤이, 인의 마지막 모습이 계속 떠올랐고, 한동안 다른 작품에 쉽게 집중하기 어려울 만큼 여운이 강하게 남았습니다.
다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개의 난해함은 아쉬운 지점이었습니다. 유성핵과 이자나미를 둘러싼 설정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채 넘어가는 장면이 적지 않았고, 결말까지 보고도 해석이 엇갈리는 부분이 남습니다. 1기의 쾌감을 기대한다면 분명히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불친절함도 이 작품의 일부라고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모든 걸 설명해 주는 이야기가 항상 좋은 건 아니니까요.
흑의 계약자 2기는 1기의 팬이라면 기대를 조율하고 보는 편이 좋습니다. 액션의 비중은 줄었지만, 그 자리에 훨씬 묵직한 감정이 채워져 있습니다. 화려하게 터지는 이야기보다 끝난 뒤에도 한 장면씩 떠오르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충분히 오래 기억에 남을 작품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1기를 다시 보고 바로 이어서 보시길 권합니다. 두 작품을 연결해서 보면 헤이라는 인물이 훨씬 다르게 읽힙니다.

이런 분께 추천합니다

✔ 《흑의 계약자》 1기를 재미있게 감상한 분
✔ 미스터리와 SF가 결합된 세계관을 좋아하는 분
✔ 인물의 희생과 열린 결말을 곱씹는 분
✔ 어두운 분위기의 SF 성장 서사를 선호하는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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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기본 정보

  • 장르 : SF, 액션, 미스터리, 느아르
  • 방영 : 2009년 10월 8일 ~ 2009년 12월 24일
  • 화수 : 12화
  • 제작사 : BONES
  • 원작 : 본즈 오리지널 TV 애니메이션
  • 공식 사이트 : https://www.d-black.net/

※ 참고

본 글은 작품을 직접 감상한 뒤 작성한 개인 리뷰입니다.